한국전쟁 민간인 희생자 추모탑을 아시나요?
위치 – 울산광역시 중구 약사동 936
통과로 지어진 이유는 무엇입니까? 뭐하는거냐고 궁금해 하시는 분들이 계실텐데요. 저도 지나가면서 봤는데 한국전 참전기념탑인줄 알고 그냥 한국전 참전기념탑인줄 알았습니다.
읽어주세요
한국전쟁 민간인 희생자 추모비는 한국전쟁(1950-1953) 동안 목숨을 잃은 민간인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조형물입니다.
전국에 세워진 민간인 희생자 추모비 가운데 가장 유명한 한국전쟁 민간인 희생자 추모비는 서울 용산구 국립서울현충원에 있다.
지난 70년 동안 전국 보도연맹 사건으로 울산 일대에서 수십 명의 민간인이 목숨을 잃었고, 유가족들은 깊은 상처와 고통 속에 힘겨운 삶을 살아왔습니다.
이제 우리는 그들의 희생의 소중함을 기리고, 남겨진 이들의 아픔을 위로하며, 다시는 이런 비극이 일어나지 않도록 노력합니다. 이에 함월산 기슭에 추모탑이 세워졌다.
이 추모탑이 우리 사회가 평화와 인권의 소중함을 인식하고 화합을 도모하는 의미 있는 장소가 되기를 바랍니다.
울산 민간인 피해 사례는?
[1945년8월15일대한민국은일제의식민통치에서해방되었습니다
그러나 해방의 기쁨은 오래가지 않았다. 그 이유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6.25전쟁에 있습니다.
선조들의 피로 회복된 조국은 38선을 따라 분단되었고, 동포들이 서로 총구를 겨누던 한국전쟁의 상처는 우리 민족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겼습니다.
특히 동족 살해의 소용돌이 속에서 많은 민간인들이 희생되었다. 울산에서는 1950년 8월 5일부터 8월 26일까지 전국보도연맹원 및 임시체포자 870여 명이 온양면 대은산계곡과 청량면 반정고개로 이송되어 총살되었다. 10회 이상.
이 중 412개는 나중에 정부 조사에서 확인되었습니다. 경찰과 육군 방첩부대의 의혹은 후퇴할 경우 국군이 인민군에 동조할까봐 두려웠고, 이런 끔찍한 비극이 일어났다. 피해자 대부분은 20~30대 청년으로 좌파 이념과 무관하게 농사를 짓는 민간인이었다. 유족들은 사회적 멸시를 받으며 삶을 살았다.
1960년 8월 22일 유해가 발굴되어 합천산 백양사 부근에 한동문묘를 세우고 비문을 세웠다.
2007년 진실화해위원회는 1950년 울산 민간인 학살을 불법행위로 규정했다. 2008년 1월 24일 노무현 대통령은 국가의 위법행위에 대해 울산시민과 유족들에게 사과했고, 2012년 대법원은 위법행위에 대한 국가의 책임과 배상을 명령한 항소심 판결을 확정했다. .
묘비에는 희생자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800명 중 400명 정도가 확인되었는데, 이름조차 없는 분들도 연구를 통해 찾아내셨으면 좋겠습니다.
추모탑은 스님이 두 개의 북채를 들고 원뿔과 긴삼을 쓰고 춤추는 스님의 춤을 형상화하여 상처와 이별의 아픔을 이겨내고 날아가는 영혼의 날개를 표현하였다.
또한 두 마리의 비둘기가 서로 마주보고 있으며 평화를 상징하는 ‘Truth’와 ‘Reconciliation’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습니다.
지나가다 6.25전쟁 민간인 희생자 위령탑을 보고 그곳이 어디인가 싶었다.
왜 지었는지 모르셨던 분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길 바랍니다.